그때 그 시절 - Korea and Japan, 1954 (1)
fabiano
그때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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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8 13:10
Korea and Japan, 1954
Photographer; Pfc Carl W. Simek, US Army.
아래 포스팅은 한국전쟁 휴전 후인 1954~1955년까지 영등포 美 8군 소속의 우편물취급소에서 복무하였던
Carl W. Simek의 사진첩으로 전쟁 중에 폭파된 한강철교와 파괴된 모습의 공장과 그 시절의 일상과 山河를 찍었다.
한강, 1954. Photographer; Pfc Carl W. Simek, US Army.
한강철교. 1954.
서울거리.
전쟁중에 불에 탄 중앙청.
촬영자가 달리는 차량에서 찍은 것으로 이곳은 영등포이며 다량으로 재배하는 양배추 단지가 보인다.
사진 촬영자인 Carl W. Simek이 근무한 美 군사우편물 취급 사무실의 뒷 마당으로 그는 주로 영등포 일대에서 촬영하였다.
한강. 19544. 6.
영등포에서 한강너머로 찍었다.
美 군사우편물 취급 사무실에서 남쪽으로 본 영등포의 모습. 1954. 10.
美 군사우편물 취급소에서 북쪽에 있는 제 19병참 중대. 40 mm 자주포 탑재 차량이 보인다.
美 군사우편물 취급소의 경비 망루에서 찍었다. 1954. 10.
폭격으로 잔해만 남은 신발공장이라고 한다. 사진촬영자, Carl W. Simek
우편물 취급소. 사진촬영자, Carl W. Simek
Photographer; Pfc Carl W. Simek
브라운 더비(Brown Derby). 1954. 10.
Pfc Carl W. Simek
폭격으로 파괴된 신발공장의 잔해. 영등포. 1954. 10.
파괴된 신발공장
Ascom City의 보충대로서 사진의 정문을 나서면 귀국하는 것이라고 한다.
K-16 AB. 1954. 10.
비행기 동체에 태극 마크가 있는 이 비행기는 한국軍 장군 전용기라고 한다.
폭파된 한강철교.
한강철교는 당시, 채병덕 육군 총참모장이 공병감 최창식 대령에게 폭파 명령을 내린 것으로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최창식대령은 이에 책임자로서 사형을 당하였다. 사후, 14년이 경과한 1964년, 최대령의 부인의 항소 재판에 따라
최대령은 무죄로 사면복권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책임자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육군 참모총장의 명령을 받고 한강철교를 폭파한 공병감 최창식대령이 폭파 책임자로서 <적전비행죄>로 사형을 당하였다.
결국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은 역사의 이이러니이다.
시카고 출신의 Reischel, 보스턴 출신의 Gary Hinely.
美 군사우편물 취급소, 영등포. 1954. 10.
美 본국에서 보내 온 우편물을 우편물 취급소에 하치하고 있다.
촬영자인 Carl W. Simek는 R&R (rest and recreation, 휴양휴가)에 따라 일본으로 떠났다.
Korea and Japan, 1954. Photographer; Pfc Carl W. Simek, US Army.
Carl W. Simek씨는 촬영사진에 간단한 설명과 장소와 날짜 등을 작성하였다.